불모지에서 일궈낸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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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죽었다”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한국 문단의 단골 화두였다. 동네서점의 소멸과 함께 등장한 출판시장의 쇠멸 위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특히 모든 콘텐츠가 영상 중심의 온라인으로 집중되고 그나마 장문의 장편소설 이 웹소설이나 웹툰으로 대체되면서 MZ세대들의 문해력 저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신종 유행어나 축약어 등을 문학 속에 녹여넣은 웹소설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기존 의 순수문학이 지녔던 방대하고 풍부한 우리말의 어휘가 점점 소멸해간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말의 70% 이상 차지하는 한자어의 최대 장점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조어능력에 있지만 그 쓰임새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 문단계의 내부 갈등도 심각한 상태다. MZ세대가 문학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세대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기성문단은 젊은 작가의 작품을 부박(무)하다고 펌 훼하는가 하면 신진 작가들은 기성세대들의 오랜 세월 쌓아온 문학적 토대를 꼰대스럽다고 치부한다. 또한 각종 신춘문예 출품작이나 수상자들이 대부분 여성 작가 위주이다 보니 성비 불 균형도 점점 심화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송합니다”란 유행어로 대변된다. 문과는 돈이 안 되니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이과를 쫓는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동시대의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낸 한국적 정서가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쳤다는 사실은 이미 다른 장르에서 증명한 바 있다. 바로 K-무비, K-드라마다. 이들은 영상콘 텐츠지만 영상으로 제작되기 전에 원작 또는 시나리오라는 텍스트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K-문학의 가능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이미 K-문학은 충분한 가능성을 내재한 셈이다 나는 1995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본 뮤지컬 <미스 사이 공>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쇼 비즈니스의 총본산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압도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에도 저 정도의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는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미스사이 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베트남 버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주한미군과 양공주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이 변방 취급을 받아왔던 것은 번역의 문제도 한몫했다. 한국어가 내포한 정서와 함의를 외국어로 표현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여러분은 휠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 다”고 말했지만 자막은 영상 콘텐츠를 이해하는 보조적 수단일 뿐, 대사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는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많다. 반면 소설은 오롯이 문장으로만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번역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영국문학 을 대표하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영어의 문학적 가치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셰익스피어에 열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영어의 힘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의 숫자가 가파 르게 증가하고 세계 유수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개설이 꾸준히 느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문학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불모지에서 얻어낸 또 한 번의 기적이다.

글 / 민희식(K-TGRZ CREATIVE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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