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류는 본능적으로 거짓말과 남을 비방하는데 아주 탁월한 재주를 타고났다. 이는 인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 수단이다. 인간이 단독생활을 거부하고 무리생활을 통해 경쟁 대상이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포식자인 인간에게 최대의 천적은 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 있어야 생존에 유리하다. 절대선과 절대악을 가르고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과정에서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아군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절대악으로 규정된 공공의 적을 설정하는 것이다. 공공의 적이란 대부분 가시적이고 위협적 존재이지만 관념적이고 상대적일 수 있다. 경쟁 대상이나 적을 악마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고 모함하는 것은 인류가 인지적 혁명을 통해 얻어낸 기재작용이다.
인간의 두뇌는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여전히 인간은 누군가의 뒷담화를 통해 내부 결속력을 다진다. 경쟁 대상자를 악마화해 내 편으로 끌어드리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은 지능이 고도화하면서 신화와 종교를 만들어냈고 논픽션이라는 상상력을 극대화한 문학 장르로까지 발전했다. 급기야 현대인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권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최근 발생한 12.3 계엄사태를 바라보면서 진실을 규명하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거짓 증언과 악의적 거짓이 난무한다는 것을 목도했다. 인간은 진영논리에 갇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적 사고에 쉽게 빠져든다. 누군가 진실을 말해도 내 믿음과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면 믿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이다. 아울러 의식적으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경향도 내재돼 있다.
<메트릭스>에 등장하는 모피어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은 요즘 사태를 상징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빨간약을 선택한 사람은 각성을 통해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는가 하면, 파란약을 선택한 사람은 세뇌작용를 통해 현실이 평온하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불편한 진실과 편안한 거짓이 우리 사회에 상존한다는 얘기다. 2024년 12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앞에 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라고 믿고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쪽은 빨간약을 들이밀며 각성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파란약을 들이밀며 거짓 속 안온한 삶을 이어가길 요구한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제시했으나 결국 빨간약을 선택했다. 네오는 더 이상 가상현실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 세계로 나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메트릭스>는 인간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어떤 신념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와 이로 인해 형성된 신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념이 그렇고 종교가 그렇다. 인류는 그동안 이념, 종교, 신념 때문에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루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글/민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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