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8일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에스콰이어> 편집장으로 재직할 때 매년 한 차례씩 뉴욕을 들락거렸지만 관광 목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심 새롭게 추진할 사업의 시장조사 목적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뉴욕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나이가 들면 뉴욕여행이 힘들 것 같아서다. 시차적응도 그렇고 15시간이란 긴 비행시간도 그렇고 결코 녹록치 않다.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비몽사몽 ‘이상한 나라 앨리스’처럼 맨해튼의 빌딩 숲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세계 최고들이 모여든다는 뉴욕 중에서도 미드타운에 숙소를 잡았다. 접근성 측면에서 미드타운만한 곳이 없다. 뉴욕의 심장인 타임스퀘어, 쇼비즈니스의 총본산인 브로드웨이, 럭셔리함의 극치인 15th 에비뉴, 한때 미국의 패권주의를 상징하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상징적 랜드마크가 즐비한 곳이다. 하지만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미드타운은 늘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떨기 위해 과한 분장을 하고 대기하는 테마파크 같다.
차라리 다운타운이 뉴욕을 더욱 뉴욕답게 한다.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아르테코 양식과 보자르 양식의 신고전주의풍의 빌딩들은 20세기 뉴욕의 최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이야말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곳이다.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을 넘어 미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시선을 압도한다.
미드타운과 다운타운 사이에 위치한 미트패킹, 그리니치빌리지, 소호는 미국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로서 뉴욕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 과거 공장지대였던 미트패킹과 소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패션 중심지로서 세계 트렌드를 주도한다. 낡고 허름한 건물들은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아뜰리에 또는 감성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컨셉추얼한 숍들로 변신을 거듭한 결과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힙한 동네가 되었다.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재개발보다는 도시재생의 새로운 롤모델로 주목받는 곳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소호도 피해갈 수 없었다. 섬유공장 지대였던 소호에서 밀려난 가난한 예술가들은 브루클린에 둥지를 틀면서 덤보를 중심으로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을 만들었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해튼 브릿지 사이에 위치한 덤보는 재개발 대신 과거 공장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리모델링해서 뉴트로의 감성을 이끌어 낸다. 서울의 성수동이 이를 벤치마킹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렇다고 뉴욕이 모두 화려하고 세련된 것만은 아니다. 뉴욕의 지하철은 마리화나 냄새와 지린내 등 대도시의 더럽고 추악한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치와 향락 이면에 타락과 범죄가 상존한다. 이것이야 말로 공공분야에 투자가 인색한 뉴욕의 철저한 능력 위주의 자본주의 민낯이다. 다함께 잘사는 공공복지보다는 능력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삶의 질이 결정된다. 철저히 능력 위주의 사회다.
잠들지 않는 도시답게 뉴욕은 자금도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생성과 소멸, 재생을 반복하면 세계 최고의 도시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세계 제1의 패권주의와 욕망이란 이름의 마천루가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뉴욕은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스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뉴욕은 세계의 수도이자 세계 최고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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