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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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과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2(이하 오캠2)>는 세계 193개국에 서비스되고 있는 넷플릭스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또 한 번의 ‘오켐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1971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동요 <둥글게 둥글게>가 밈을 통해 전 세계로 확대 재생산되는가 하면, 공기놀이가 때아닌 인기를 끌며 각종 온라인 챌린지에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야 낯선 한국의 동요와 전통 놀이가 흥밋거릴 수 있다지만 국내 평단에서는 <오겜2>가 너무 우리 현실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소름 돋는다는 반응이다. 황동혁 감독마저도 의도치 않게 자신의 드라마가 우리가 처한 작금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OX 투표는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극명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죽음의 게임을 계속 이어가자는 찬성파 O와 게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반대파 X는 서로 죽고 죽이는 극한의 갈등 구조를 보여준다. O와 X는 투표를 통해 선택할 수 있으며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게임은 계속 이어갈 수도 멈출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O를 선택한 다수의 찬성파에 의해 게임은 계속 이어진다. 자발적 참여가 만들어낸 지옥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게임의 절차는 자율적이고 민주적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요점은 다수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으냐는 물음이다. 공리주의(功利主義)는 19세기 영국에서 발달한 사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공리주의는 한마디로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의제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최대의 다수가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공리주의의 원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나 국민의 의사를 물을 때 다수결의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인류 공통의 보편적 가치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실제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악의적 거짓 선전선동에 의해 다수의 대중이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다수의 의견이 옳다 해도 마이클 샌들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 규정한다. 다수로 인해 소수의 인권이 유린되고 희생을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래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개인 유튜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온라인 상에는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이 난무한다. 일부 악의적 선동가들에게 현혹된 대중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엄청나다. 더욱이 이 사회의 공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언론과 사법기관이 여론에 떠밀려 그릇된 판단을 한다면 우리사회의 사법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독일의 나치주의와 러시아의 스탈린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은 선전선동을 통해 궁중심리에서 촉발된 집단광기다,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와 나치당원에게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겁한 역사 인식이다.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묵시적 동의가 없었다면 나치가 유대인 60만 명을 학살하는 끔찍한 홀로코스트는 막을 수 있었다. <오겜 2>는 집단광기가 만들어낸 다수결의 원칙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다.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이분법적인 OX로 쉽게 결정해버리는 극한의 군상이야말로 우리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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