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없는 강경대응과 무책임한 책임전가의 외교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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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가 또 한 번 길을 잃었다. 한미 관세협상에서는 국익을 우선으로 내세우겠다더니 엇박자 협상과 정보력 부재, 결정적 순간마다 목소리를 키우는 ‘강경론’으로 일관했다. “자주파냐, 동맹파냐”의 이분법에 갇혀 상대의 요구에는 끝없이 끌려가고, 일선 외교관은 구체적 설명도 책임도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이 요구한 투자의 실체도 명확치 않은 채, 정부는 줄곧 ‘원칙론’만 읊조린다. 협상의 중심은 실종됐고, 남은 것은 ‘수세적 외교’라는 냉소뿐이다. 미국 조지아에서 벌어졌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체포 구금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응은 어설펐다.

문제는 위기의 상황에서 드러난 무능력이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학생 피살 사건은 현지 대사관의 늑장 대응과 사고 책임 떠넘기기는 ‘책임 있는 외교’라는 슬로건의 민낯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유가족이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못했고, 참담한 현실은 국회와 언론의 지적 이후에야 뒤늦게 조치가 시작됐다. 외교부는 협조 요청만 수십 차례 반복하며 현지 경찰의 눈치만 살피는 사이, 국민 생명은 경시되었고, 국격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외교의 본령이란 국익을 지키는 동시에 위기 속 개개인의 삶을 끝까지 사수하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외교 정책에서 드러난 것은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며, 실질적 책임은 외면하는 뒷걸음질 뿐이다. 국민은 “외교는 어디 있느냐”고 묻지만 정부는 책임지는 자도, 싸우는 자도, 전략도 없이 허덕인다.

외교란 결국 고도의 전략과 상호주의에 입각한 타협이다. 둘 다 갖춰질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의 정부 외교는 그 어느 쪽에도 미치지 못한다. 합의는 없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책임 회피와 시간 끌기뿐이다. 신뢰는 행동의 결과에서 나오는데 외교관이 작은 이해타산만 좇는 사이 국익과 국민은 뒷전이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 이 외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런 외교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가 문제의 핵심과 원인을 명시하고, 실행 주체를 지정하는 동시에 행동 방안을 신속히 제시해야 한다. 외교 현장의 매뉴얼 개선을 위한 ‘위기관리 실무 책임자의 현장 배치’, ‘차관급 상황 점검과 실시간 브리핑’ 같은 일사불란한 조치가 실행됐어야 했음에도 캄보디아 한국 대학생 피살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지난 뒤에야 외교부 2차장을 단장으로 한 정부 합동 대응팀을 파견했다.

관계 부처의 다각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추상적 구호가 아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외교부의 해외 사건 DB화, 비상 연락망 구축 등 구체적 조치가 시급히 나왔어야 했다. 관계 부처의 책임성과 즉각적 정보 공개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하며, 위기 때마다 ‘누가, 언제, 무엇을 할지’ 실행을 신속히 추진해, 정책 수용성이 높아졌다는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책임자 지명’, ‘대국민 사과’, ‘상황별 브리핑’ 등을 강화해야 한다. 쉬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이렇듯, 구체적 책임 · 실행력 · 국민적 신뢰회복이라는 접근법을 통해 외교 · 정책 실패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외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대통령의 실적을 부풀리기에 급급하고, 여당은 강성 지지층에 집착한 나머지 문제의 핵심을 피하려다 화를 키우는 꼴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신뢰를 회복하기 바랄 뿐이다. 다음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이 기다리고 있다.

글 / 민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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